15. 얼룩-죽음이 태어난 자리
“꼭 도착하고 나서 펼쳐봐야 돼.”
아침 일찍 집 앞에서 기다린 건지, 분주하게 나서는 나에게 편지봉투를 건네주었다. 이 마을을 떠난다는 소식은 어젯밤에야 겨우 꺼냈는데, 피곤한 눈을 보니 새벽 내내 편지를 쓴 듯하다. 나는 줄 게 없는데... 내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지 내 눈치만 보는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팔을 벌렸다. 너는 활짝 웃으며 마지막 포옹을 해줬다.
며칠이 걸려 도착한 도시는 정신이 없이 바쁘다. 새 방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온기가 가신 편지를 뜯는다. 잔뜩 구겨져 이미 죽은 노란 프리지아. 편지를 얼마나 급하게 썼던 건지 제대로 지우도 못하고 덮어쓴 실수들, 잔뜩 번진 연필 자국, 그리고 노란 꽃잎이 눌린 자리에 만들어진 희미한 그림까지 얼룩투성이다.
가방에서 다 쓴 잉크 병을 꺼내 죽은 꽃을 꽂아 넣고, 소매로 새 책상의 먼지를 닦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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